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 '구찌'가 최근 가상세계에 매장을 열었다. 백화점에 입점할 때도 까다롭기로 알려진 구찌는 이 가상세계 매장에서 브랜드 대표 제품인 '마틀라세 숄더백'을 3000원에 판다. 원래 이 제품의 가격은 199만원에 달한다. 구찌뿐만이 아니다. 나이키와 푸마 등 글로벌 스포츠 패션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나이키는 한정판 스니커즈를 가상세계에 내놓았다.
메타버스가 새로운 산업으로 뜨고 있다. 메타버스는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뜻한다. 모든 게 '가짜'인 이 세상에선 반대로 뭐든지 구현이 가능하다. 메타버스 이용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원하는 대로 자신의 '부캐'를 꾸미고, 현실과는 달리 '거리두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가상세계에서만 쓸 수 있는 제품을 내놓고 이를 가상자산으로 결제할 수 있게 만든다. 이 모든 건 이용자가 현실세계와 함께 가상세계에서의 자신을 또 다른 '진짜' 나로 인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인 '로블록스'도 메타버스의 대표 사례다. 로블록스는 레고 블록처럼 생긴 캐릭터(아바타)로 다양한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1억5000만명, 일평균 접속자수는 4000만명에 달한다. 로블록스 안에선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캐릭터를 꾸민 뒤 친구들과 게임을 하거나, 몬스터를 사냥하는 등 현실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족들과 모여 낚시도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안에서 홀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전 세계 이용자수가 대폭 늘었다.
미국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캇은 지난해 3월 게임 '포트나이트' 세계 안에서 콘서트를 펼쳤다. 이 공연에는 아바타 2770만명이 몰렸고, 공연매출은 220억원에 달했다. 트래비스 스캇은 공연료로 약 11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마케팅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구찌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구찌빌라'를 내놓고, 아바타가 구찌 제품을 착용한 모습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했다. 현실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면 수백만원에 달하지만 구찌빌라에선 1만원이면 된다. 프랑스의 크리스찬 루부탱은 지난해 파리 패션위크를 기념해 2021 SS 컬렉션을 가상의 플랫폼에서 공개했다.
한강에서 친구와 만나 '치맥'도 가능하다. 편의점 CU는 조만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안에 'CU한강공원점'을 열 계획이다. 오프라인 편의점처럼 즉석커피를 내리거나 즉석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꾸밀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모든 게 가상세계에서의 자신을 진짜 '나'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현실세계에서의 경험을 가상세계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게 메타버스의 장점"이라고 했다.
LG전자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에서 가상인간 '김래아'를 선보였다. 코로나19 여파에 온라인으로 열린 이 행사에서 김래아는 LG전자 임원들을 대신해 제품을 소개하고 컨퍼런스에서 연설도 했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9000명에 달한다.
LG전자는 김래아를 23세 여성이자 싱어송라이터 겸 DJ로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 LG전자는 김래아를 만들어내기 위해 딥러닝 기술을 활용, 표정과 목소리를 훈련시켰다. 향후 LG전자 마케팅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메타버스 시장은 지난해 460억달러(약 51조5000억원) 규모에서 2025년 2800억달러(약 313조 원)로 6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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